전자소송이라는 말을 아는가. 소장 접수, 답변서 제출, 그 밖의 각종 서류 처리를 법원 창구 앞에 줄을 서지 않고도 인터넷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변호사 일을 하다 보면 이 시스템의 편리함을 새삼 실감하는 순간이 있다. 법원 민원실 대기 줄에 서야 했던 시절은 이제 먼 기억이 됐다.
서류 하나 내려고 이동 시간을 쪼개거나 교통비를 쓸 일도 없다.
사무실에 앉아서 필요한 시각에 바로 처리하면 그만이다.
처음에는 특허 사건에 한정되어 있던 이 시스템이 이제는 민사, 가사, 행정 사건으로까지 넓어졌다.
승계집행문 신청처럼 아직 종이로만 처리해야 하는 절차가 일부 남아 있기는 하다.
그래도 변론기일이나 심문기일처럼 법정에 직접 나가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제 법원 청사를 찾아야 할 일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렇다면 형사 사건은 어떨까. 지난해 10월, 형사전자소송시스템이 출범했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반길 만한 변화였다.
다만 솔직히 말하면, 지금은 기대와 아쉬움이 엇비슷하게 섞인 상태다.
형사 사건에는 민사나 행정 사건과 결정적으로 다른 특성이 있다. 재판 전에 반드시 ‘수사’라는 단계를 거친다는 점이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 과정에서 방대한 증거와 진술이 쌓이고, 그것이 조서라는 형태로 남는다.
형사전자소송시스템이 제 기능을 하려면 이 수사 단계의 기록 전체가 전자 형태로 축적될 수 있어야 한다.
그 통로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 ‘형사사법포털’이다.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사건 진행 현황 조회부터 서류 제출, 민원 신청까지 메뉴 구성은 꽤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다.
문제는 그 메뉴들을 실제로 쓸 수 없다는 데 있다.
변호인이 수임을 하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이 변호인 선임계 제출이다. 이후 수사기관에 의견서를 내야 하는 경우도 잦다.
그런데 이 기본적인 서류들을 포털로 제출하는 길이 아직 열려 있지 않다. 여전히 우편이나 팩스, 아니면 직접 방문에 의존해야 한다.
더 기묘한 것은 그렇게 우편으로 건네받은 서류를 담당 수사관이 다시 스캐너로 스캔해 시스템에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자화를 목표로 만든 시스템을 위해 사람이 수작업을 해야 하는 역설이다.
사건 기록 열람과 등사는 사정이 더 불편하다. 변호인이 기록을 검토해야 할 때 포털을 통한 온라인 열람은 아직 지원되지 않는다.
수사기관에 직접 찾아가 열람하거나 복사본을 챙겨 오는 방법뿐이다. 그 방문 신청마저 포털에서 할 수 없어, 팩스나 우편으로 따로 신청서를 보내야 한다.
과도기인 만큼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고는 생각하지만, 현장에서는 체감하는 불편이 작지 않다.
얼마 전 일선 경찰서 조사에 동석했을 때의 일이다. 모든 곳이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적지 않은 경찰서에서 조서 작성 후 피의자에게 태블릿을 건네 전자서명을 받는 방식을 도입하고 있었다.
서명이 끝난 조서는 자동으로 PDF로 변환되어 시스템에 올라간다. 흡사 금융기관이나 보험사를 연상시키는 방식이었다.
이런 흐름을 보면 머지않아 앞서 언급한 문제들도 하나씩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가 생긴다.
변호인 선임계 하나를 내기 위해 우체국에 들러야 했던 일, 열람등사 신청서를 팩스로 보내고 며칠을 기다리던 일이 결국은 지나간 풍경이 될 것이다.
형사전자소송시스템이 온전히 자리를 잡으면, 그 혜택은 형사사법 절차에 발을 들인 모든 이에게 고루 돌아갈 것이다.
변호사로서, 그리고 이 시스템의 이용자로서 그 완성의 시점을 기다리고 있다.